[이정호칼럼] 심산 김창숙과 며느리 손응교
울산제일일보 승인 2023.03.19 20:32
 기미년 3월 1일은 독립 만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유림 대표 격인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에게 급히 상경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심산이 어머니의 병환으로 늦게 서울에 도착하니 이미 독립선언서 인쇄가 끝난 상태여서 유림 대표들은 빠진 것이다. 심산은 망국의 책임이 있는 유림이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함을 크게 탄식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파리장서운동’이다. 심산은 전국의 유림들을 규합해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준비했다. 당시 영남 유림들은 이진상의 한주학파가 대세였는데, 심산도 한주의 아들인 대계 이승희의 문인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23일에 곽종석을 대표로 하는 유림 137명이 서명한 ‘파리장서’를 들고 파리로 가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이때 상해에서는 이미 김규식을 파리에 파견한 상태여서 유림들의 독립청원서는 영어로 번역하여 파리에 우편으로 보냈다.
심산은 상해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무렵, 유림이 파리에 독립청원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일대 검거 회오리가 불었으니 이 사건을 ‘제1차 유림단 사건’이라고 부른다. 심산은 8년여 동안 중국에서 백범과 대의를 따르는 지사들과 함께했다. 북경에서 가서도 박은식, 신채호 등과 활동했는데, 이회영과는 독립운동 기지 구축을 계획하고 자금 확보를 위해 1925년 8월에 국내로 잠입했다.
심산은 당초 목표액보다 적은 돈을 가지고 상해로 돌아갔다. 이 돈으로는 기지 건설에 미치지 못하여 의열단의 나석주를 지원, 식산은행 폭탄 투척 의거가 가능했다. 이 자금 출처 때문에 다시 한번 유림들이 고초를 겪으니 이른바 1927년의 ‘제2차 유림단 사건’이다. 심산의 딸을 며느리로 맞은 이재락을 비롯하여 손진수, 손후익, 이우락 등 울산 선비들도 고초를 겪었다. 북경에서 유학 중이던 심산의 장남 환기는 귀국하자마자 끌려갔다가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다.
심산도 곧이어 체포되었다. 그때의 극심한 고문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이후 35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다. 1934년에 질병으로 형 집행 정지가 되어 풀려나서 병원에 묶여 있다가 요양 차 울산 백양사에 머무르기도 했다. 1940년에야 망명 20년이 넘어 고향 성주 사도실 마을로 돌아갔다. 심산은 자금 모금 시 언양에서 교통사고 당했을 때를 회고했다. “두 달 가까이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는데, 범서 입암의 문암 손후익 가족들이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심산은 문암의 딸, 손응교(1917-2016)를 며느리로 맞았다. 시집갈 무렵 시아버지는 형무소에 갇혀 있었고, 남편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을 떠나있어서 며느리는 혼자 자식을 키우며 집을 지켰다. 옥살이 뒷바라지를 하다가 출옥 후에는 고문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는 바깥 시어른 부양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하면 기가 막힌다. 어느 날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담배 피우기를 가르쳤다. 힘든 나날들을 감당하고 있는 며느리가 많이도 안쓰러워서일 것이다.
광복되던 해에는 더욱 가혹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중경에 나가 있던 남편은 유해로 돌아왔고, 세 살 막내가 죽었다. 친일 부역자들의 부활과 이승만의 독재정권에 맞서는 시어른을 지켜보며 며느리는 눈물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심산이 성균관대를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했던 일이 크게 위안이 되었을 것 같다. 심산은 1962년, 84세로 고단한 인생 여정을 마감했다. 대의와 신념에 찬 불굴의 독립운동가 심산은 참으로 큰 어른이었다.
홀로 남겨진 며느리는 백 살까지 살았다. 그 모진 세월 다 감내하고 노후에는 궁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남매가 잘 성장해준 덕분이었다. 이웃해 살던 이관술의 영향으로 동덕여학교를 다니다가 열일곱에 시집가서 시아버지 손발이 되어 살았다. 아기를 업고 중국까지 시어른 심부름을 다녔던 젊은 날도 있었으니 모진 세월 다 이겨낸 여장부였다. 울산의 딸 손응교와 울산과 인연이 깊었었던 김창숙은 울산 사람들이 각별히 우러러야 할 두 분이다.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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